시민들에게 전하는 치유레터 첫번째, “모든 사람이 이 전쟁의 참전용사이고, 우리의 전우입니다.”

시민들에게 전하는 치유레터 첫번째, “모든 사람이 이 전쟁의 참전용사이고, 우리의 전우입니다.”

from. 채정호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전임회장)

우리는 지금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옛날 전쟁은 분명히 구분되는 전방에서 군인들끼리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전은 다양한 무기로 인해서 후방에서도 언제 어떻게 타격당할지 모르기에 피해가 더 클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trauma)”라는 말의 어원은 “뚫다, 뚫리다”라는 뜻에서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믿고 있던 곳이 뚫리는 타격을 당하면 놀라고 당황하고 불안합니다. 그야말로 트라우마 상황이 됩니다.

지금 코로나19와의 전쟁도 비슷합니다. 5년 전의 메르스 때는 병원 내 감염이 주 문제여서 몇몇 병원이 최전방이 되어 전쟁을 치렀다면, 이번에는 지역 사회 감염이 크게 늘면서 이곳저곳이 뚫리며 폭격을 당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당연히 두렵고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전염성이 높은 병이 한참 기승을 부릴 때에는 소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사람이 밀집한 곳에 가급적 가지 않고 손을 자주 씻는 등 위생을 잘 챙기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멀리해서 감염을 예방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물리적 거리가 확보하려다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잘 알고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흔한 감기에 걸리면 1-2주 고생하면 될 것이라고 알기에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모르는 것, 처음 겪는 것,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을 만나면 걱정하고 불안해합니다. 코로나 19처럼 처음 접하는 감염병이 그렇습니다. 특히 사망자가 나오게 되면 두려움이 커집니다. 타인을 잠재적인 보균자로 보게 되고 그들이 내게 병을 옮기는 사람으로 여기면 사람들이 싫어지고 무서워집니다. 이렇게 위협을 느끼고 나면 뉴스 같은 것도 위협적인 것만 골라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람이 위협을 받으면 긴장하게 되고 그러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높아지며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면역력으로 이겨야 하는데 바이러스를 피하려는 두려움이 오히려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조심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주변 사람은 함께 이 병을 이겨낼 동료이지 좀비 영화에 나오는 가해자들이 아닙니다. 설사 사회적 거리를 두게 되더라도 머쓱해지지 않도록 평시보다 더 인사를 잘하고, 마스크를 끼고 있었을 가능성이 커서 활짝 눈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임을 자제하여 만나지 않더라도 이메일이나 전화, 문자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함께 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함께 전쟁을 겪고 있는 동료들을 전우로 보지 않고 적으로 바라보면 그 전쟁에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패전으로 끝난 모든 전쟁은 적과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내부에서 무너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전우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감염될 수도, 또 사랑하는 가족에게 병을 옮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도 아픈 환자들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어서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의료인들.

우한에 있던 교민들을 데리고 왔을 때 내치지 않고 욕하지 않고 격리 기간 동안 따듯하게 맞아주었던 주민들, #힘내라 대구라는 해시태그의 SNS를 끊임없이 올리는 네티즌도, 피해를 함께 나누자며 세입자에게 한 달 월세를 받지 않기로 한 건물주도, 번거로운 모든 일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공무원들도, 대구로 경북으로 달려가는 자원봉사자도, 성금을 내는 사람들도. 몸이 안 좋은 데 혹시 몰라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기 격리를 하고,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그러면서도 장사하는 사람들의 피해가 없을까 걱정하고 애타게 기도하는 당신…

이 모든 사람이 이 전쟁의 참전 용사이고 우리의 전우입니다.

비록 다 힘들지만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도울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 쌓여 서로 믿고 도우며 응원하며 사기를 올린다면 코로나 19는 꼬리를 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인류는 세균과 바이러스의 전쟁을 여러 번 겪고 피해를 보기도 했지만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퇴치하였고 무력화시켜왔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전 세계가 바라보는 최전선에서 우리가 잘 이겨내는 것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어렵지만 그렇게 해낼 것입니다.

트라우마는 힘든 일이지만 트라우마를 잘 겪어낸 사람들은 그 이전보다는 차원이 다른 근사한 삶을 살아나갈 수 있게 됩니다. 전우들과 함께 우리의 면역력을 키워내고 이 전쟁을 이겨낸다면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건강하다는 것, 같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2020.03.03  채 정 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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