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처방전) 3월 네 번째 주 추천 도서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창비, 2019

코로나 전염병은 인간이 가까이 접촉하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안 그래도 사람 간 정서적 거리의 소원(疏遠)이 문제가 되는 현대 사회에 코로나바이러스는 그 간극을 더 벌려 놓는 원인이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사람 사이의 거리와 이를 극복하려는 접촉의 시도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우리는 판교 테크노밸리를 배경으로 바삐 살아가는 사람들 내면에 있는 고립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수평적 의사소통을 강조하는 회사 대표의 제안으로 직원들은 서로의 이름 대신 영어 이름을 지어 부른다. 개인의 본질적인 이름조차 회사 소통 방식의 효율성을 위해 희생된다. 비슷하게 또 다른 주인공은 인터넷 사이트의 아이디인 ‘거북이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회사 회장의 눈 밖에 남으로써 월급을 신용카드 포인트로 받게 된 그녀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거북이알’이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려 이를 현금화하려고 애쓴다. 영어 이름이든 인터넷 사이트 아이디이든 자신의 본명 대신 ‘안나’, ‘케빈’, 또는 ‘거북이알’로 불린다는 설정은 본질적인 자아를 덮어 버린 직장인의 가면을 상징하는 듯하다.

작품 속에서 직장인의 가면을 씀으로써 서로 소원해진 자아들이 조심스럽게 서로를 이으려고 시도한다. 다음 장면을 보자. 혼자 외톨이처럼 지내는 앱 개발자 케빈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담배를 핀다. 그의 유별난 이 행동을 알고 있던 주인공 안나는 그의 시간과 공간에 나타나서는 그가 수집하는 스타워즈 시리즈 레고를 생일선물로 내민다. 언제나 자신만을 향해 있던 케빈의 시선은 어느덧 안나의 운동화를 향한다. 고립에서 관계로 진행되는 순간이다.

장류진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는 동안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에 종일 마스크를 쓴 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의 언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댄 주래프스키 지음 /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2015

코로나바이러스를 진단하기 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패스트푸드의 ‘드라이브 스루’를 차용한 검사가 연일 화제다. 우리의 효율적인 선별진료소에 대해서 많은 외신이 보도했고,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도입하고 있다. 사실 드라이브 스루 자체는 1930년대 미국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가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차 안에서 받아 쥔 햄버거 세트는 너무나 미국적이다. 비빔밥 위에 ‘고추장’이 한국 것이듯, 햄버거 세트 안 ‘케첩’ 역시 당연히 미국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책 ‘음식의 언어’ 저자는 케첩이 아시아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준다. 그에 따르면 수천 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생선과 새우를 소금과 함께 발효시킨 소스가 케첩의 기원이다. 기원전 2세기경 중국의 한무제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생선 소스는 중국으로 퍼져 나갔다. 16세기 중국 푸젠성에서는 이 생선 소스를 케첩(ke-tchup)이라고 불렀는데, ‘저장된 생선 소스’라는 뜻이다. 그 후 4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케첩은 그 의미가 일반화되어 ‘소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19세기 영국은 앤초비가 들어간 생선 소스 케첩에 처음으로 토마토를 넣기 시작했고, 나중에 앤초비는 빠지게 된다. 1910년 무렵 하인즈 같은 미국 회사들은 토마토에 설탕과 식초를 더 넣어 영국식보다 달콤하고 걸쭉한 소스를 만든다. 이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케첩은 수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과 아시아에서 유럽과 미국에 이르는 공간이 녹아 있다.

저자는 우리 앞에 놓인 음식들 이면에 인류가 그동안 상호작용해온 역사가 녹아져있다고 말한다. ‘음식의 언어’를 읽는 동안 우리는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판데믹 현상을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 인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뭉크: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유성혜

아르테, 2019

전염병은 거시적 관점에서 인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미시적 관점에서 인간 개개인의 삶에 깊은 자국을 남긴다.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뭉크의 삶에서 후자의 예를 찾을 수 있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뭉크의 이 말은 그의 그림 속에 반복되는 모티브들이 어린 시절 본 것, 즉 경험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함의한다. 1885년 그가 ‘습작’이라는 제목하에 그린 그림을 보면, 한 소녀가 베개를 등에 기대고 있고, 그 옆에 한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 나중에 ‘아픈 아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 그림은 병상의 아픈 소녀와 이를 돌보는 한 여인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는 1년 동안 물감을 긁어내고 물감이 흘러내리도록 놔두어 거칠고 혼란스러운 질감으로 캔버스를 덮었다. 당대에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지만, 그는 노트에 다음에 같이 써서 그리고자 했던 의도를 드러냈다.

“내가 그리고자 한 것은 그 힘 없는 움직임이다. 떨리는 눈꺼풀, 속삭이는 듯한 입술. 그녀는 숨을 들이쉰다. 마치 살고 싶다고 말하듯.”

여러 번 반복해서 그렸던 ‘아픈 아이’의 모티브는 그의 어릴 적 트라우마와 연결된다. 뭉크는 5살 때 폐결핵으로 엄마를 잃었다. 그런 그를 아껴주던 누나 소피마저 뭉크가 13살 때 엄마와 같은 병으로 죽었다. 연속된 죽음은 그의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기는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 그의 작품 세계에도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림 속 아픈 소녀는 그의 누이 소피였다. 그는 평생 어린 시절 ‘보았던’ 상실을 작품을 통해 다시 회복(reparation)시키려고 노력했다.

유성혜의 책 ‘뭉크: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를 통해서 우리는 그가 ‘보았던’ 것을 그의 시선을 통해서 같이 ‘볼’ 수 있을 것이다.  

* 정신건강의학과 이용석 전문의님이 추천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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