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처방전) 4월 첫 번째 주 추천 도서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

스티븐 존슨

히틀러가 레닌그라드를 봉쇄하고 있던 1942년 8월9일,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공연장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일곱 번째 교향곡 <레닌그라드>가 초연되었다. 1941년과 42년 사이의 겨울, 도시가 나치 병력에 포위되면서 식량 공급이 전면 차단되었고, 기온이 영하 30도로 곤두박질쳤다. 그 사이 사망자 수는 매달 10만 명에 다다랐다고 한다. 그 극한 상황에서 연주가 시작되고, 이는 러시아 국경 전역에 방송된다. 책은 이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했던 빅토르 코즐로프와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음악 듣는 일은 참 신기한 구석이 있다. 요즈음처럼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어려울 때, 밖에 나가는 것도 저어되어 집안에 가만히 고여 있어야 할 때, 혼자 시간 보내기 가장 수월한 일 중 하나가 음악 듣기일 것이다. 음악은 언어도 상징도 없는 순수한 감각적 경험에 속하기 때문에(심지어 가사가 있는 노래조차도. BTS의 예를 보라) 음악이 우리 마음속에 일으키는 내적 경험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마음에 직접 와 닿기에 다른 어떤 예술보다 음악은 나이를 가로지르고 문화와 지역을 뛰어넘어 사람들 마음속에 공통된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예술 형식이기도하다.

이 책의 저자 스티븐 존슨이 코즐로프와의 인터뷰로부터 시작해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통해 풀어나가고자 하는 이야기도 이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평생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던 쇼스타코비치의 일견 난해하고 거칠면서도 어느 순간 금방이라도 깨질 듯 극도로 섬세해지는 음악이 황폐했던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내면에 어떤 울림을 일으키는지를 탐색한다. 책에서 언급하는 쇼스타코비치 곡을 들으며 일독해보시기를 권한다.

“이제 나는 확신한다. 한 곡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몽테뉴를 읽은 사람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본문만 천삼백 쪽에 달하는 이 책을 마주치면 두께만으로 질려버려 선뜻 책을 펼치지 못한다. 사실 멋드러진 철학책 같지도 않은, 뻔한 제목이 달린 오백 년 전 서양 귀족의 잡글 모음집에서 이십일 세기에 사는 우리가 얻을 게 과연 뭐가 있겠느냐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 까칠한 철학자 니체가 “실제로 이런 인간이 글을 써준 덕분에 이 세상을 사는 즐거움이 늘어났다”라고 말한 사람이라면? 잘난 척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신분석가 라캉이 “시대를 대표하는 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넘어 영원한 안내자”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평생 완벽한 문장에 대한 불안과 강박 속에서 살아간 <보바리 부인>의 소설가 플로베르가 “가장 마음을 잘 진정시켜주는 작가”라고 생각하여 잠들기 전마다 읽었던 사람이 바로 몽테뉴라면?

몽테뉴는 1533년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37세 때 독서를 위해 법관 생활에서 물러나려 했으나 전쟁에 휘말리면서 앙리 4세의 시종으로서 정치판 한가운데에서 오래 활동했다. 자기도 모르게 보르도 시장에 당선되어 관직 생활을 하기도 했다. 평생 조용한 생활을 꿈꿨던 그는 1586년 마침내 성으로 돌아와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살았다. 그는 안다고 확신하지 않았으나 모른다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온건하고 따듯한 회의주의 속에서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고 스스로 물으며 삶을 누렸다(“나는 내 대상, 즉 나 자신을 확보하지 못한다. 그는 늘 타고난 취몽으로 혼돈 속에 비틀거리며 간다. 나는 그가 있는 그대로 그에게 흥미를 갖는 그 순간에 그를 잡아본다. 나는 그 존재를 묘사하지 않는다. 나는 그 과정을 묘사한다”). 몽테뉴는 역사상 가장 먼저 제국주의를 비판한 사람(“얼마나 치사하고 비열한 승리인가. 일찍이 어떤 야심도, 어떤 국가 간 적개심도 같은 인간을 그토록 끔찍한 원한과 그토록 비참한 재난으로 몰아넣은 적은 없었다”)이기도 하고, 우리가 고양이 집사에 불과하다는 사실(“내가 고양이와 놀고 있을 때, 어쩌면 고양이가 나를 상대로 놀고 있는 건 아닐까”)을 가장 먼저 깨달은 선각자이기도 했다. 일단 몽테뉴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하신다면, 이 책의 두께가 부담이 아니라 위안이 되리라 확신한다.

 

하자르 사전

밀로라드 파비치

집안에 가만히 앉아 시간 보내기로는 판타지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많은 판타지들이 책장을 넘기는 동안의 설렘과 흥분만큼의 댓가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책을 덮은 다음엔 다시 비루한 현실로 추락하여 맨땅에 부딪히는 충격과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더 깊고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하지만 끝없이 우리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중력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어주는 판타지가 있다면? 세르비아 출신 시인이자 소설가 밀로라드 파비치의 책 <하자르 사전>은 원래 <카자르 사전>이라는 제목으로 1998년에 처음 번역 출판되었다. 나는 우연히 이 책을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누군가에게 빌려준 책은 되돌아오지 않았고(나 같았어도 그랬을 테니 원망은 안한다), 다시 구해보려고 하니 절판된 책의 중고 가격이 열 배가 올라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열 권을 불법복사하여 주변에 선물하고, 내 것 두 권을 소장하던 중, 마침내 <하자르 사전>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소설은 7세기 경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가 10세기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그들이 썼던 언어가 단 한자도 남아있지 않은 하자르민족에 대한 이야기. 어느 날 하자르 제국의 군주는 기이한 꿈을 꾼다. 그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세 현자를 부른다. 그는 꿈을 가장 잘 풀이하는 이의 종교로 민족과 함께 개종하기로 한다. 책은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하자르 민족의 비밀을 사전의 형식을 빌려 파헤치는데, 과거와 현재, 픽션과 논픽션, 꿈과 현실이 너무도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천의무봉의 솜씨로 맞물린다. 한 권의 소설이지만, 수십 권의 시집 같기도 하고, 삶의 깊은 비의에 가닿는 심오한 탐색이면서 너무도 가벼운 대낮의 꿈같기도 하다. 누군가 무인도에 갈 때 들고 갈 소설 단 한 권을 고르라고 하면 이 책을 챙길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어둠 속에서 마수디 옆에 누워 있던 남자는 절대로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았다. 그 사람의 내부에 있는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이 사람이 꿈꾸고 있는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침실은 너무나 조용해서 마수디 주위의 어둠 속 어디에선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바로 그 순간 마수디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거울을 뚫고 들어가듯이 꿈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닥은 모래였고 비바람이 몰아쳤으며 들개와 목마른 낙타들이 득실거렸다.”

* 정신건강의학과  김건종전문의님이 추천해셨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 ‘담은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감정의 치유력』 『정신적 은신처』 『수치 어린 눈』 『황홀』 『자아와 방어기제』 『리딩 위니코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마음의 여섯가지 얼굴은 직접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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